장자 외편
11월 29, 2025
역해자(Translator) : 권오석 權五奭
▩ 개 요
‘권오석(權五奭)’ 교수의 ‘장자 외편(莊子 外篇)’은 ‘도가(道家)’ 사상의 핵심 경전인 ‘장자’의 전체 33편 중, 내편(內篇, 1~7편)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외편(外篇, 8~22편)’의 내용을 번역하고 해설한 책입니다. ‘장자’는 장자(莊周)가 직접 쓴 내편과 제자 및 후학들이 장자의 사상을 계승하여 쓴 외편, 그리고 잡편(雜篇)으로 구성됩니다. 권오석 교수의 역해본은 외편에 담긴 장자 사상의 확장과 변용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 세속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진정한 자유를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줄거리의 핵심입니다.

▩ 주 제
‘장자 외편’은 내편의 사상을 바탕으로, 인위적인 문명과 사회적 가치관이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억압하는지를 비판하고, 이러한 제약 속에서도 개인이 어떻게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지를 다각도로 탐구합니다.
1. 사회적 제약과 인위적 가치에 대한 비판 (반세속주의)
외편은 내편에서 다룬 ‘소요유(逍遙遊)’의 정신을 더욱 현실 세계에 적용하여, 세상이 강요하는 규범과 욕망이 인간을 얼마나 부자유하게 만드는지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 구애받지 않는 삶: 명예, 지위, 물질적 부, 심지어 선행이나 덕을 쌓는다는 생각조차도 또 다른 집착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세상의 모든 인위적인 가치와 잣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강조합니다.
- ‘참된 성품’의 보존: 문명과 교육이 오히려 인간의 ‘참된 성품(眞性)’을 해치고 인위적인 욕구를 심어준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복잡한 지식이나 도덕적 가르침에 얽매이지 말고, 본래의 순수하고 소박한 상태로 돌아갈 것을 권유합니다.
2. 자연의 이치와 본성에 순응하는 지혜
외편은 인간이 자연의 한 부분임을 인식하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곧 도(道)를 체득하는 길임을 다양한 우화를 통해 보여줍니다.
- 자연스러움의 미덕: 어떤 목적이나 의도 없이 ‘스스로 그러한(自然)’ 상태에 머무르는 것을 최고의 경지로 여깁니다. 마치 나무가 스스로 자라고 꽃이 스스로 피어나듯, 인간도 자신의 본성에 따라 살아가야 함을 강조합니다.
- ‘무위(無爲)’의 실천: 억지로 무엇인가를 이루려 하지 않는 ‘무위’의 태도가 오히려 만물을 조화롭게 하고, 더 큰 성취를 이끈다고 설명합니다.
3. 통치와 윤리: 무위의 다스림
외편은 내편의 사상을 확장하여 이상적인 통치자의 모습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윤리를 제시합니다.
- 덕치(德治)의 한계와 무위지치(無爲之治): 유가에서 강조하는 덕치(德治)조차도 인위적인 노력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통치는 통치자가 백성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無爲) 다스림을 통해 백성들이 스스로 잘 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 성인(聖人)의 역할: 성인은 백성들을 깨우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백성들을 어리석게 만드는(愚民) 듯한 태도를 취하며, 그들이 본래의 순수성을 유지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4. 권오석 역해의 특징과 메시지
권오석 교수의 역해본은 외편의 다양한 우화와 복잡한 논리를 현대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는 데 중점을 둡니다.
- 명확한 번역: 원문의 함의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어 번역을 통해 장자의 깊은 뜻을 독자들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돕습니다.
- 해설의 깊이: 각 편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통해 장자 사상이 단순히 기괴하거나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현대인의 삶과 정신적 문제에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함을 보여줍니다.

▩ 결 론
‘장자 외편’은 세속의 가치관과 인위적인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본성과 자연의 이치에 순응함으로써 진정한 정신적 자유와 해방을 얻는 길을 제시하며, 독자들이 삶의 본질을 되찾고 평화로운 자아를 발견하도록 돕는 도가 철학의 중요한 안내서입니다.

▩ Contents <<< [장자 외편]
- 제1편. 변무(騈拇)
- 제2편. 마제(馬蹄)
- 제3편. 거협(胠篋)
- 제4편. 재유(在宥)
- 제5편. 천지(天地)
- 제6편. 천도(天道)
- 제7편. 천운(天運)
- 제8편. 각의(刻意)
- 제9편. 선성(繕性)
- 제10편. 추수(秋水)
- 제11편. 지락(至樂)
- 제12편. 달생(達生)
- 제13편. 산목(山木)
- 제14편. 전자방(田子方)
- 제15편. 지북유(知北遊)
▩ 인용글(Quoted Passage) <<< [장자 외편]
[변무]와 육손이는 나면서부터 있는 것이나 예사보다는 많은 것이다.
사마귀나 혹은 형체가 생긴 뒤에 붙은 것이지만 바탕으로 볼 때 역시 많은 것이다.
인의를 과다히 쓰려 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사람의 [오장]에서 짜낸 지혜라 할지라도
진정한 도덕에 어긋날 뿐이다.
그러므로 변무는 쓸모가 없는 군살을 덧붙인 것이고,
손에 가지를 친 육손이는 쓸데없는 손가락이 돋은 것이고,
오장의 진실한 속에서 다시 인의를 쳐든다는 것은 불필요한 의미를 덧붙여
쓸데없이 총명한 체하는 데 불과하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눈이 밝은 자는 색깔을 보기만 하여도 마음이 들떠서
갖가지 무늬를 대하면 정신을 잃도록 그것에 빠진다.
청색, 황색 무늬를 휘황하게 수놓은 예복 따위를 만드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닌가.
그런 사람의 하나로 [이주]를 들 수 있으리라.
또 지나치게 귀가 밝은 자는 [오음]을 듣기만 하여도 마음이 들뜨고
[육률]에 이르러서는 정신을 잃도록 그것에 빠진다.
[금석사죽]이며 [황종대려] 따위는 그래서 만들어진 게 아닌가.
그런 사람의 하나로 [사광]을 들 수 있으리라.
또 지나치게 인을 앞세우는 자는 덕을 뽑아버리고
천성을 막아가면서 명성을 얻으려고 한다.
피리나 북을 가지고 천하로 하여금 도저히 미치지도 못할 법을 받들게 하려는 것이니
이 때문이 아닌가.
그런 사람으로는 [증삼]이나 [사추]를 들 수 있으리라.
또 지나치게 변론에 치우친 자는 기와와 기와를 노끈으로 묶듯이 남의 글을 멋대로 고치고
[견백동이]의 궤변을 늘어놓는다.
아무 쓸모 없는 말을 칭찬하는 데 지쳐버리는 게 이 때문이 아닌가.
그런 사람으로는 양주와 묵적을 들 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와 같은 것은 모두 본질에서 벗어난 무가치한 도리일 뿐,
천하의 법도라 할 [지정]이 아니다.
* 변무 – 발가락의 엄지와 둘째가 물갈퀴처럼 붙어버린 것.
* 오장 – 심장, 간장, 비장, 폐장, 신장.
* 이주 – 황제 때의 사람이라고도 하며 혹은 춘추시대 사람이라고도 한다. 백보 밖에서도 털끝을 잘 분간했다는 시력이 아주 좋은 사람.
* 육률 – 음악에는 육률과 육려가 있었다.
* 금석사죽, 황종대려 -악기 이름.
* 증삼 – 공자의 제자 효경을 지음.
* 사추 – 위나라 영공의 가신.
– 변무(騈拇)
말의 발굽은 서리나 눈 위를 밟고 다닐 수 있고,
털은 바람과 추위를 막아준다.
그리하여 자연 그대로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며 깡총거리는데.
이것이 말의 [진성]이다.
비록 높은 누각과 궁전이 있어도 쓸모가 없지만 [백락]이 나타나고,
[나는 말을 잘 다룬다]하며 털을 태우거나 깎고 말굽을 다듬거나 낙인을 찍고
굴레나 고삐로 잇달아 매고 구유나 마판으로 벌려둠으로써 말 가운데 열의 두셋은 죽는다.
또한 훈련을 시킨다면서 굶주리게 하고 목마르게 하고 달리게 하고 뛰게 하고
가지런히 늘어세우며,
앞에선 재갈과 가슴받이의 우환이 있고 뒤에선 채찍이 있어 주인의 위엄으로 위협하니
말 가운데 과반수가 죽고 만다.
옹기장이가 말했다.
[나는 찰흙을 잘 다루어 둥글게 함이 그림쇠 같고,
모나게 함이 곱자와 같다.]
목수가 말했다.
[나는 나무를 잘 다루어 위어지게 함이 갈고리 같고,
곧게 함이 먹줄과 같다.]
도대체 찰흙이나 나무의 본성이 그림쇠나 곱자와 갈고리나 먹줄로써
다스려지기를 원하겠느냐?
그러나 세상에서는 일러 말하기를 [백락은 말을 잘 다루고,
옹기장이는 찰흙이나 나무 따위를 잘 다룬다.]고 한다.
천하를 다스리는 자 또한 이와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뜻하는 바 천하를 잘 다스린다 함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저 백성들에게는 [상성]이 있지만 추우면 길쌈하여 옷을 지어 입고,
배고프면 밭을 갈아 먹게 마련이다.
이것을 [동덕]이라 부르고,
하나가 되어 치우치지 않는 것을 [천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마제(馬蹄)
상자를 열고 자루를 더듬고 궤룰 뒤지는 도둑을 지키려면,
반드시 봉하고 묶어놓으면 빗장과 장식을 튼튼하게 한다.
이것이 아른바 세속의 지혜이다.
그러나 큰 도둑에 이르러선 궤짝을 지고 상자를 들고 자루 채 메고 달아나므로,
그들은 봉함과 빗장과 장식이 단단하지 못한 것을 오히려 두려워한다.
그렇다면 앞서의 이른바 지혜라는 것은 큰 도둑을 위해 오히려 준비해 두는 셈이 아닌가.
그러므로 시험삼아 이 문제를 말해보자.
이른바 세속에 있어서 안다는 자란 큰 도둑을 위해서 쌓아두는 자가 아니겠는가.
이른바 성인이란 큰 도둑을 위해서 지키는 자가 아니겠는가.
무엇으로 그것을 아는가.
옛날 제나라에선 고을이 서로 이웃하고 서로 바라보고 있어
닭이나 개 울음소리가 서로 들렸고,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는 곳에,
쟁기와 괭이로 갈고 일구는 땅을 사방 2천여 리나 되었다.
나라 안 곳곳에 종묘사직을 세워 [읍옥]과 [주려]와 [향곡]을 다스리는 것이
어느 것 하나 성인의 본을 받지 않은 게 있었던가.
그러나 [전성자]가 하루아침에 제군을 죽이고 그 나라를 도둑질했다.
도둑질한 것이 어찌 그 나라뿐인가.
아울러 성인과 지자가 이룩한 법까지도 훔친 것이다.
그러므로 전성자는 도둑의 이름을 가지고도 몸은 요순의 평안함을 누렸으나
소국은 감히 시비하지 못하고 대국도 감히 치지 못했으니,
12대에 걸쳐 제나라를 지배했다.
이것이 곧 제나라를 도둑질하고 아울러 성인과 지자가 이룩한 법까지 차지함으로써
도둑의 몸을 지킨 것이 아닌가.
– 거협(胠篋)
천하를 있는 그대로 맡긴다는 말은 들었으나
천하를 다스린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은 천하가 그 본성을 방탕하게 만들까 두려워서이며,
너그럽게 하는 것은 천하가 그 덕을 고칠까 두려워서이다.
천하가 그 본성을 방탕하게 하지 않고 그 덕을 고치지 않는다면
굳이 천하를 다스릴 필요가 없지 않는가.
옛날 요가 천하를 다스릴 때에는 천하를 기쁘게 해주고
사람은 그 본성을 즐겼지만,
이는 고요함이 아니었다.
걸이 천하를 다스릴 때에는 천하를 지치게 만들고
사람은 그 본성을 괴로워했지만,
이는 구차한 것은 아니었다.
무릇 고요하지 않고 구차하지 않은 것은 덕이 아니다.
덕이 아니고서 영원한 것은 천하에 없는 것이다.
– 재유(在宥)

세속의 가치관과
인위적인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본성과
자연의 이치에
순응함으로써
진정한 정신적 자유와
해방을 얻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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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장자 외편‘] ✈ 책으로 읽기를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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