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강의
12월 5, 2025
저자(Author) : 김충열
▩ 개 요
저자 ‘김충열’ 교수의 ‘중용 강의’는『중용·대학강의』 중 제2부 ‘중용(中庸)’ 부분만 발췌한 것으로,『중용』은 유교 사상의 심오한 심성론(心性論)과 최고 경지를 담고 있습니다. 『중용』은 원래 『예기(禮記)』의 한 편이었으나, 주희(朱熹)에 의해 사서(四書) 중 하나로 격상되었으며,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으로 시작하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근원적인 이치를 탐구합니다.

▩ 주 제
저자의 ‘중용 강의’는 이러한 『중용』의 철학적 깊이를 현대적으로 해설하고 실천적 의미를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1. 중용의 근본 사상: 천명과 본성 (천도)
- 천명지위성 (天命之謂性): 하늘이 부여한 것을 ‘성(性, 인간의 본성)’이라 하고,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며, 도를 닦는 것을 ‘교(敎, 가르침)’라 합니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 곧 하늘의 이치와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는 『중용』의 근본 원리입니다.
- 미발(未發)과 이발(已發)의 조화:
- 미발: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의 감정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 합니다. 이는 마음의 고요함과 평정의 상태입니다.
- 이발: 감정이 드러나서 절도(節度)에 맞는 상태를 ‘화(和)’라 합니다. 이 ‘중과 화(中和)’가 천하의 근본이며 도달해야 할 최고 경지입니다.
2. 중용의 실천: 군자(君子)의 길
『중용』은 단순히 중간을 택하는 모호한 태도가 아니라, 지극한 도(道)에 도달하는 실천적인 방법론입니다.
- 시중(時中)의 지혜: 군자는 ‘상황과 때(時)’에 맞게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행동합니다. 이는 고정된 기준이 아닌 유동적인 상황 판단을 통해 매 순간 최적의 균형을 찾아 실천하는 지혜를 의미합니다.
- 불후(不朽)의 덕: 군자는 ‘숨겨진 곳에서도 도를 실천(신독, 愼獨)’하여, 겉과 속이 한결같은(誠) 태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처럼 꾸준한 실천으로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불후의 덕을 쌓아갑니다.
3. 중용의 최고 경지: 성(誠)과 천인합일(天人合一)
『중용』은 성(誠)을 통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설명합니다.
- 성(誠)의 가치: ‘성(誠)’은 곧 하늘의 도(天道)이며, 지극히 성실함을 통해 만물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근원적인 힘입니다. 인간은 이 성을 통해 자신을 완성하고, 더 나아가 만물을 완성시키는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 천인합일: ‘지성(至誠)’을 다하는 사람은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는 능력까지 갖게 되며, ‘하늘의 이치(天道)’와 ‘인간의 도리(人道)’가 하나로 합일되는 경지(천인합일)에 도달하게 됩니다.

▩ 결 론
저자의 ‘중용 강의’는 인간의 본성이 곧 우주의 근원적인 질서임을 밝히고, ‘매 순간 중(中)과 화(和)를 이루는 꾸준한 실천(中庸’을 통해 인간이 ‘지극한 성실함(至誠)’의 경지에 이르러 ‘하늘과 합일(天人合一)’하는 완전한 인격체가 될 수 있음을 해설하는 유가 심성론의 정수입니다.

▩ Contents <<< [중용 강의]
제1부 서론
- 1. 원시유가 사상사의 재건
- 2. 초묘죽간을 통해 본 자사 및 자사학파의 사상개관
- 3. 공자학의 진수 ‘성명과 천도’론의 유발
제2부 『중용』강의
- 1. 『중용』 해제
- 2. 『중용』 제1강
- 3. 『중용』 제2강
- 4. 『중용』 제3강 군자의 도―부부의 도에서 평천하의 도까지
- 5. 『중용』 제4강 지성至誠, 진성盡性, 참천參天의 도
- 6. 『중용』 제5강 성인의 도
▩ 인용글(Quoted Passage) <<< [중용 강의]
하늘이 인간 만물을 낳고
그 생명들에게 각기 나름대로 살아갈 수 있는 지능의 씨앗을 심어 준 것을
성(性)(선천적 본성 자체)이라 하고,
그 가능한 씨앗을 잘 가꾸고 기르면(사람의 경우)
문명세계를 이룰 수 있는 방법과 과정을 도(道)(길, 도리, 법칙 같은 것)라 하며,
그러한 방법과 과정을 (이는 성인이 만들어 놓은 문명의 형태와 질서 같은 것)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는 것을 교(敎)(후천적 훈습이나 공부)라 한다.
사람에게는 그렇게 살아가야 할 길이 있으니,
그 길에서는 조금도 이탈할 수가 없고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만일 그 길에서 떠날 수 있다면 그는 길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그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거나 잠시도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만일 사람이 그 길에서 벗어난 삶을 산다면 그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일반사람의 마음은 남에게 보이지 않을 때,
남에게 들리지 않을 때 방심하고 방사하여 길에서 이탈하기 쉽다.
그러므로 지성을 갖춘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 때 더욱 스스로를 경계하고 근신하며,
남에게 들리지 않을 때 더욱 두려워하고 조심한다.
세상의 이치에서 감추어져 있는 것보다 더 밝게 드러나고,
미세한 것보다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지성인은 은밀하게 홀로 있을 때를 삼가고 삼간다.
(이는 이어서 나올 희노애락의 정감행위가 발하기 전의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이때 신독 공부를 잘해서 中에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따라 행위결과가 和를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의 동기원인이 되므로 미리 말한 것이다)
희노애락의 감정행위가 밖으로 발하지 않았을 때의 고요한 마음을 중(中)이라 하고,
그 마음이 감정을 통해 밖으로 나타나
주위 사물이나 상황과 맺은 관계가 질서나 절도에 알맞은 상태를 화(和)라 한다.
중은 모든 것이 움직이며 변하는 천지간에서,
다른 것과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는 생존자(행동하는 자)가
행동 이전에 미리 갖추고 있어야 할 기본 자세며,
화는 모든 움직이는 자들이 서로 충돌이나 마찰 없이 서로의 삶을 유익하게 하는 교통로다.
이러한 중과 화가 극치를 이룰 때 천지는 각기 자기의 자리에 정위치하고,
그 속에서 만물은 발육한다.
중니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중용의 도리를 잘 알아서 그가 살아가는 모든 언행을 수시로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조정하지만,
소인은 중용의 도리를 모르기 때문에 객관상황과 충돌 마찰하는 부조리한 삶을 살아간다.
왜 그럴까?
군자가 중용의 삶을 잘 영위하는 것은 그가 군자의 덕(지혜와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기 중심을 잡고 변화하는 상황에 알맞게 대처해 나가기 때문이고,
소인이 중용에 어긋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가 지혜와 능력이 부족하면서도
자기 고집을 내세우며, 주위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용이라는 도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천하의 모든 존재가 하염없이 움직이고 출렁대는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꼭 알고 행동해야 하는 지극한 생존 요령인데,
사람들 중에는 이를 깨달아 알고 신중하게 처신하는 자가 드물다.
그렇게 중용의 도리를 망각하고 세상에 쓰이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용의 도가 왜 행해지지 않는가를 나는 안다.
안다는 사람은 무명발전에 욕심이 과한 나머지 자연의 중용을 지나가 버리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연의 삶 속에서 자연이 항상성(恒常性)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대로 따라갈(미칠) 수 있었지만
이 지자(知者)라고 하는 것들이 오히려 혼돈을 일으켜
자연의 중용 그마저도 따를 수가 없게 되었다.
중용의 도를 세상 사람들이 왜 옳게 알지 못하는가를 나는 안다.
어진 이는 지나치고 못난이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사람들이 모두 먹고 마셔서 생명을 위하지만
정작 그 음식 맛에 대해서는 알려 들지 않아 음식의 진미를 아는 이가 드문 것과 같다.“
공자께서 말씀하였다.
“슬프구나, 중용의 도가 세상에 행해지지 않는구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순임금님이야말로 진정 중용의 도를 밝게 알고 슬기롭게 행사하신 위대한 지성이다.
순임금님께서는 어떤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의 내막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스스로 차근차근 탐구해 들어가기도 하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그가 생각하고 아는 것을 묻기도 해서
처방을 내리기 전에 정확하고 정밀하게 결정적인 문제 원인을 찾아내는 데 열심히 하셨다.
또 사소한 일일지라도 그거 간과해 버리는 일 없이
자세히 살펴보시는 것을 습관처럼 하셨다.
그런 다음 세상에 쓰이면 해가 되겠다고 판단된 것은 더 이상 커 가지 않게 제지를 하고,
세상에 쓰이면 천하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크게 교훈이 되겠다고 여겨진 것은
적극 드러내서 발전할 수 있도록 힘을 다하셨다.
그뿐인가?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여 어떻게 갈피를 잡아야 할지(어떻게 중용의 길을 찾아야 할지)
파악하기 어려울 때면 그들 견해를 양 극단으로 모았다가
서로를 절충시켜(한 발자국씩 물러서거나 양보하게 해서)
그 중심(합의점)을 백성들에게 시행하는 것이었다.
이게 바로 순임금이 위대한 이유다.
그러니까 순임금은 절대권위를 가지고 가지런하지 않은 백성들의 생각과
이해관계를 마치 비질하듯 싹 쓸어서 가지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라는 교통정리의 위치를 찾아 자리를 잡아 놓은 다음
모두가 원활히 소통하도록 하신 것이다.
순임금의 큰 지혜란 바로 이런 것이니라!“

인간의 본성이
곧 우주의 근원적인
질서임을 밝히고
매 순간
중(中)과 화(和)를
이루는
중용을 통해 인간이
지극한 성실함(至誠)의
경지에 이르러
‘하늘과 합일
(天人合一)
하는
완전한 인격체 형성
<< 중용 강의 >>
<< 같은 부류 Post(‘논어강의’) 바로가기 >>
베스트셀러 [‘중용 강의‘] ✈ 책으로 읽기를 권장합니다.






